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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관련 상황/비밀글 미리보기 (C~E, Z)

조현병 환자가 영어를 쓸 일이 있을까?



나는 대학교 시절 영어를 꽤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었다. 이를 위해 매일 2시간 이상씩 시간을 내서 영어동아리에 참여했었다. 심지어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영어공부를 했다. 그 영어동아리는 영어를 수단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는 동아리였다. 종교적인 색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왔지만 그 곳에서 영어를 꽤 많이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회사에 취직하는 데 실패했고, 직장에서 일하면서 영어공부를 따로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야근, 주말근무를 밥먹듯이 하는 회사에서 일한다면 영어공부를 따로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영어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 했던 영어공부가 아예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직업도 생각보다 영어를 쓸 일이 많다. 특히 당시 그 악덕회사에서 개발자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외국의 오픈소스나 테마를 활용할 때 필요한 모든 지식을 나 혼자 영어를 읽어가면서, 때로는 영어로 질문까지 해가면서 해결해야 했다. 영어를 할 줄 몰랐다면 업무능력에 조금 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조현병 환자는 웬만한 회사에 취직하기 어렵고, 그 결과 영어를 쓸 만한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조현병 환자가 그나마 취업할 수 있는 단순노동직 일자리에서는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공공인턴 일을 하면서 영어를 쓸 일은 1도 없다. 물론 그 경험이 공무원영어에는 약간의 도움이 되었지만, 문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현병이면 영어를 업무에서 쓸 기회도 거의 없지만, 생활에서 영어를 즐길 기회도 남들보다 적다고 봐야 한다. 조현병이면 여행에도 제약이 있다. 장거리비행 때문에 시차 문제로 약을 꾸준히 먹어도 조현병이 재발할 수도 있다. 물론 조현병 환자가 여행한다고 무조건 조현병이 재발하는 건 아니지만, 재발의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해야 한다면 남들보다 정상적으로 여행할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

여러모로 조현병이면 비장애인보다 영어를 쓸 기회가 더더욱 주어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비장애인도 외국에서 살거나 영어를 써야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면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업무적으로 영어를 쓸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다. 생계를 걱정해야 할 조현병 환자가 영어를 공부한다고 생계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닌데도 영어가 의미가 있을까?



조현병 환자에게 영어공부는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를 해도 된다. 하지만 남들보다 영어를 쓸 기회가 더더욱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으려면 조현병 환자는 비장애인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사실 조현병은 인간의 노력에 한계를 가져오는 병이기 때문에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요한 상황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현병 환자에게 영어공부는 다른 노력과 비교했을 때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2018년 9월 20일, PM 8:2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