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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관련 상황/비밀글 미리보기 (C~E)

조현병인 내가 페미니즘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



나는 성범죄를 당한 후 조현병에 걸려 정신장애인이 되었다. 물론 조현병에 걸리고 나서 꽤 오랫동안 공식적으로는 정신장애인이 아니었지만, 빌어먹을 악덕회사로 인해 밤샘근무를 강요당하면서 조현병이 재발할 처지에 놓였고 결국 회사와 임금체불 관련 법적공방을 벌이면서 정신장애 등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나의 사례에서 나쁜놈은 악덕회사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조현병이라는 병을 발병시켜 문제의 근원적인 발단이 된 성범죄자이기도 하다. 내가 조현병이 아니었더라면 회사에서 각종 말도안되는 위법한 대우와 임금체불까지 당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난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페미니즘 활동을 섣불리 하지 못하는 걸까?



내 주제를 알기 때문이다. 난 페미니즘 활동을 하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정당한 활동으로 인정받으려면 예쁘고 능력있고 정신적으로 아무 하자 없는 사람이 페미니즘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선 난 예쁘지도 않고 조현병으로 정신질환이 있으며, 조현병으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아 먹고사는 문제가 막막한 지경이다. 이런 내가 페미니즘 활동을 하면 사람들이 좋게 볼 리가 없다.

물론 사람은 노력으로 예뻐질 수 있지만, 조현병 환자에게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모와 관련된 상품들은 비싸다. 비장애인보다 돈벌이가 훨씬 어려운 조현병 환자가 외모에 돈투자하면 그나마 최저임금 정도 버는 쥐꼬리만한 돈마저 거덜난다.



나는 조현병 때문에 많은 권리를 잃었다. 썸남은 물론이고 친구관계를 일절 끊었고 운전하는 걸 스스로 포기했다. 조현병 때문에 사실상 원하는 직업을 더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페미니즘도 이와 마찬가지 시선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로서의 권리는 내가 조현병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여자들이 남자들과 비교하여 많은 권리를 잃고 산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성범죄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조현병에 걸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이미 조현병에 걸린 이상, 정신병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잃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되고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성별이나 장애에 의한 차별은 당연하지 않지만 능력에 의한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 능력이 있어야 자기 분야에서 가치를 창출해서 사회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차별은 타고난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차별인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안되거나, 조현병의 경우 생계문제 때문에 약을 못먹고 병이 재발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문제다.

조현병도 생물학적인 질병이기 때문에 타고난 유전자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타고난 능력이 남보다 모자라고 그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면 그 차이를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눈높이를 낮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작은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조현병 환자가 이런 인생의 섭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본인의 병을 인정하지 못하면 계속 약을 끊는 것을 반복하여 조현병이 재발해서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페미니즘 활동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다. 조현병이면 페미니스트가 되기도 어렵다.



2018년 7월 12일, PM 7:1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