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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기업에서 조현병 환자가 살아남는 방법 주치의에게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치의에게 라는 핑계를 대며 약을 우리 엄마나 동생이 대신 받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때문에 바쁜 게 아니라 회사가 병원을 못 가게 막는 것이었다. 내가 1달에 1번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사장은 라면서 병원을 못 가게 막아서 2~3개월에 1번만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나마도 오전 2시간 정도만 자리를 비울 시간을 줘서, 오전 진료를 일찍 받고 바로 회사에 출근하러 가야 했다. (불행하게도 출퇴근 거리도 왕복 4시간이 넘었다.) 회사에서 충분히 진료받을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치의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렇게 으름장을 놓는 사장 앞에서 나는 조현병이라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털어놓을 수 없었..
이상한 낌새가 보이는 회사 자살시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하루 10개 회사에 이력서를 낸다는 전략은 통했다. 2015년 2월 10일 ** 입사가 확정되어 웹퍼블리셔이자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을 시작하였다. 일은 어렵지 않았고 처음에는 정시퇴근, 정시출근도 잘 지켜지는 회사라 만족했다.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첫 프로젝트에서 html, css 퍼블리싱은 물론 jQuery, 장애인 웹 접근성 등을 모두 포함하여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제출하였고 사장과 실장은 물론 가끔씩 조언을 해주러 오던 타 회사 소속 프로그래밍 고문도 나를 칭찬하였다. 타 회사 소속 프로그래밍 고문은 사장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쟤 진짜 물건이야. 요즘 저렇게 하드코딩 하는 애가 흔한 줄 아니?" "실무경험 쌓으면서 요령만 좀 터득하면 대박 ..
조현병 환자가 취업이 쉬울줄아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회적기업 블로그 운영 중간 정도때부터 틈틈히 웹개발, 웹퍼블리싱과 프론트엔드 개발 교육을 들으러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1년 이상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사실상 백수였기 때문에 경력공백이 생겨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없었다. 2014년 4월부터 취업성공패키지(내일배움카드제)로 웹디자인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내가 이제는 컴퓨터 관련 업계로 취직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여 집안일이나 시키자는 생각으로 요리를 배우라고 권유하였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하고 적성에 맞는 건 요리보단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다. 취업성공패키지의 내일배움카드제 웹디자인 교육은 오히려 너무 쉬워서 탈이었다. 나에겐 포토샵 툴 같은 걸 다루는 스킬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디자인감각을 키워..
비현실적 회사와 비현실적 목표 당시 격리병동이 있던 병원에서는 나중에 처방을 내리면서 나에게 처음부터 인베가 서스티나를 처방했다고 주장했지만, 지금 조현병과 관련된 의학지식이 좀 있는 상태에서 돌이켜보면 그 주장이 의심스럽다. 아무리 과용량이라도 인베가 서스티나의 초기 부작용이 그 정도로 심각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당시 해당 격리병동에 있는 환자들 중 신체적인 부작용이 가장 심한 축에 속하는 조현병 환자였다. 신체적인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계속되었더라면 장기적으로 정신병원에 격리되어 퇴원이 불가능한 환자가 되었을 것이다. ` 여튼 초기 부작용이 심각해서인지, 퇴원 후에도 꽤 오랫동안 인베가 서스티나 9mg ~ 12mg를 유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의사의 설득으로 학교..
조현병으로 입원 직후 내가 이전 글 까지의 이야기를 꽤 상세하게 하고, 날짜까지 정확히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조현병의 증상 중 수시로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조현병과 관련된 첫 경험은 괴로워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행복해서 문제였다. 특히 기성용, 허영생과 관련된 경험은 너무 웃겼고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 또는 길에서 혼자 키득거리거나 큰 소리로 웃었던 적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경험은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하게 만들었다. 병적인 행복도 행복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에 약을 끊겠다는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입원 후 환청과 환시, 망상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예 없어진 게 아니라서 하루에 1~2번 정도는 격리병동 CCTV를 향..
카테고리 관리 원래는 비밀글이 있지만, 공직자가 되어서 공개하지 않게 될 글들이 다수이므로, 비는 카테고리가 생겨서 카테고리를 변경하겠습니다. 그래서 원 비밀글 포함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31) 서론 (B) (6) 조현병 관련 상황 (22) 과거1 - 시간별 간략 분류 (A) (20) 과거2 - 시간별 상세 분류 (A') 과거3 - 테마별 분류 (F) (0) 나도 일할 수 있어요 (0) 직업재활 (D) (0) 자기관리 (E) (0) 돈, 물건 관리법 (G) (0) 일기 (101) 다이어트일기 (H) (0) 감사일기 (-) (58) 성공일기 (-) (43) 조현병 : 번외사항 (C) (0) FEEDBACK (J*) (0) 티스토리 스킨 (2) 결론 (Z) (0) 출처: https://zoahaza.net/ [조아하..
조현병이 내린 또 다른 과제 2010년 9월 15일, 수요일은 수업이 하나밖에 없으면서 오전에 1시간 반짜리 교양수업 하나만 있는, 일주일 중 가장 여유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난 그날 수업을 빠지고 대신 집 근처 미술관에 갔다 왔다. 그 땐 감시당한다거나 과제를 수행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진은 정말 이상하게 찍었다. 심지어는 카메라 시간설정도 바꿔놔서 실제 사진을 찍은 날짜와 EXIF 정보의 날짜가 다르다. 그런데도 미술관에서의 매너는 잘 지켰다. 조용했으며 미술관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남아있는 사진자료들은 전부 미술관 가는 도중에, 또는 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서 집으로 오는 도중에 찍은 사진들이다. 심지어는 메모도 하지 않아서 메모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가는 도중 사진과 오는 도중 사진만으로 미술관에 갔다..
병적인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난 여전히 조현병 다음날(2010년 9월 14일), 삼성이 나를 다시 감시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현실이 되었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길에서부터 삼성이 수시로 나에게 과제를 부여하는 바람에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여 수업을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삼성이 허영생에 관한 과제를 부여하였다. 나는 삼성에게 감시당하면서 허영생을 코스프레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허영생은 당시 동서울대학교 실용음악과를 다니며 연예활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확인해보니 허영생은 동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과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허영생과 관련된 과제를 수행하면서, 내가 허영생이 되어 봤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허영생이 평소에 학교에서 정말 웃기게 행동하고 다닐 걸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