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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라도 월급은 거저주는게 아니다 공공인턴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의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일 외의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쌓을 수 없었다. 공무원들의 주요 관심사는 돈이었고, 늘상 땅얘기와 건물얘기, 주식얘기를 했다. (나중이 되어서는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하게 되었지만, 공공인턴 초반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특히 일반행정직이 아닌 지적직 공무원들과 같이 일했기 때문에, 땅이나 건물 문제가 업무와 연관성이 있어서 그런 부분은 더 심했다. 조현병 환자로써 돈벌이가 어려워서 그런 재테크나 돈투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나는 소외되었다. 비장애인이 일을 못해서 짤리면 개인의 문제였지만, 조현병 환자가 일을 못해서 짤리면 남들이 편견을 가진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공무원공부보다도 일이 우선이었다. 내가 짤리면 ..
조현병 근로자 임금 및 퇴직금 체불 판결 공무원공부를 하는 한편, 동시에 빌어먹을 악덕회사에 법적대응을 해야 했다.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신고를 했는데, 나는 노동부의 출석 요구에 꼬박꼬박 출석하고 자료도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러나 빌어먹을 사장은 노동부의 출석 요구에 자주 빠졌고, 회사 경영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결국 지급명령이 떨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퇴직금을 받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은 결국 형사처벌 사건이 되어, 법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형사처벌과 관련된 절차에도 사장은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참석을 거부하는 날이 많았고, 형사처벌 절차를 진행하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으며 임금체불 사실을 신고 후 1년 정도 된 시점이 되어서야 판결이 났다. 2017년 8월 30일 판결문이 내려졌는데, 내가 승소했다. ..
왜 공무원면접에서 계속 떨어질까, 혹시 조현병이라서? 조현병 환자는 공무원준비만 할 수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내면 생각이 굳고 언어능력이 저하될거라 보았다. 그래서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책을 꾸준히 읽어서 블로그에 매일마다 글을 발행하였고, 업무관련 서적을 읽는 등 자기계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무원공부를 하면서도 틈틈히 매일마다 책을 읽어서, 대략 2일에 1권 정도 분량으로 블로그에 책을 리뷰하였다. 문제는 그 책을 리뷰하면서 실명과 얼굴이 공개된 블로그에 내가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나중에 공무원 최종 합격의 결격사유가 되었고, 문제가 되어 블로그를 지우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SNS에 조현병이라는 게 언급되어 있을만한 채널은 전부 다 지워버렸다. 이 글은 공무원 준비중인 시기에 작성한 것인데, 조현병이..
공무원공부를 결심하게 된 조현병 환자 나에게 임금체불까지 한 악덕회사를 퇴사하기 2~3달 전에 주치의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주치의가 바뀌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존 주치의에게 우리 회사가 4대보험이 안된다는 사실을 귀띔했다. 악덕회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주치의는 4대보험이 안된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하며, 라고 물어봤다. 그 주치의는 내가 이정도로 말도안되는 대우를 받았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치의가 바뀌고 나서도 회사는 내가 병원에 가는것을 거부하였으나, 주치의는 주치의가 바뀌었으니 내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며 예약시간을 변경해가면서까지 나를 오라고 설득하여 결국 병원을 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내가 병원에 너무 자주 간다며 불만을 드러내었다. 퇴사 후 새로운 주치의에게 내가 회사에서 이런 대우를 받았..
조현병 환자의 이직은 성공할 수 있을까 퇴사 후 몇일간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지만 점차 회복되었다. 그리고 조현병 양성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재발하지 않은 것이다. 약은 그대로 인베가 서스티나 6mg이었고, 용량을 늘리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일한 것에 대한 월급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부모님은 그 월급만큼은 꼭 받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월급날인 8월 24일이 되어도, 그 이후가 되어도 계속 월급이 입금되지 않았고, 내가 아닌 부모님이 오히려 화를 내면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퇴사했는데 왜 월급을 줘요? 월급 못줘요. **씨가 프로젝트 중간에 그만둬서 우리 회사가 떠안은 손해가 얼마나 큰데요! 오히려 그 돈 물어내셔야죠!" 이 말을 들은 부모님은 크게 분노하셨고 "우리 애 아프거든요! ..
악덕기업 때문에 생긴 조현병 증상 1년 3개월 차 정도 되었을 때, 우리 회사에서 했던 일 중 역대급으로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따 왔다. 규모는 컸지만, 상대적으로 백엔드 프로그래밍이 필요한 부분이 거의 없는 프로젝트였다. 이번에도 또 야근, 주말근무, 밤샘근무를 할까봐 걱정되었지만, 백엔드가 필요한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핑계를 댈 수도 없어서 그 프로젝트를 수락하였다. 사실 그 프로젝트는 규모가 크긴 해도, 제대로만 일이 진행된다면 밤샘근무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 업무였다. 하지만 당시 디자이너였던 실장은 디자인 샘플도 주지 않고, 홈페이지 진행상황에 대한 모니터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컨셉이니까 내가 알아서 전부다 해라 라는 식이었고, 디자인까지 어느정도 내가 도맏아서 하기를 원했다. 이런 식이라면 일이 제대로 진척될 ..
악덕기업에서 조현병 환자가 살아남는 방법 주치의에게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치의에게 라는 핑계를 대며 약을 우리 엄마나 동생이 대신 받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때문에 바쁜 게 아니라 회사가 병원을 못 가게 막는 것이었다. 내가 1달에 1번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사장은 라면서 병원을 못 가게 막아서 2~3개월에 1번만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나마도 오전 2시간 정도만 자리를 비울 시간을 줘서, 오전 진료를 일찍 받고 바로 회사에 출근하러 가야 했다. (불행하게도 출퇴근 거리도 왕복 4시간이 넘었다.) 회사에서 충분히 진료받을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치의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렇게 으름장을 놓는 사장 앞에서 나는 조현병이라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털어놓을 수 없었..
이상한 낌새가 보이는 회사 자살시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하루 10개 회사에 이력서를 낸다는 전략은 통했다. 2015년 2월 10일 ** 입사가 확정되어 웹퍼블리셔이자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을 시작하였다. 일은 어렵지 않았고 처음에는 정시퇴근, 정시출근도 잘 지켜지는 회사라 만족했다.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첫 프로젝트에서 html, css 퍼블리싱은 물론 jQuery, 장애인 웹 접근성 등을 모두 포함하여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제출하였고 사장과 실장은 물론 가끔씩 조언을 해주러 오던 타 회사 소속 프로그래밍 고문도 나를 칭찬하였다. 타 회사 소속 프로그래밍 고문은 사장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쟤 진짜 물건이야. 요즘 저렇게 하드코딩 하는 애가 흔한 줄 아니?" "실무경험 쌓으면서 요령만 좀 터득하면 대박 ..